황야방皇惹房

~15일의 기록~


05







이 시각에 어디로 가시냐는 열의 부름도 뿌리치다시피 한 경염이 한달음에 향한 곳은 랑야관이었다. 한 번 드나들었다고 그새 눈에 익은 이 작은 황성의 성담 벽을 넘어 당장에 복도까지 들이닥쳤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매장소가 쓰러졌다고? 도대체 왜. 이제 막 연을 맺기 시작한 책사에 대한 예우라기엔 지나치게 극진했다. 경염은 숨을 몰아쉬었다. 생각해 보니 매장소의 방이 어디 있는 지 알 길이 없다.

“잠시, 묻겠소. 매장소, 아니 종주의 방은 어디로 가야 하오.”
“아, 저…….”

경염은 보이는 대로 붙잡았다. 느닷없이 붙들린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그를 올려다보았다. 너무 놀란 탓이다. 그러나 묻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종주께서 쓰러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측근들이 전부 다 도착한 마당에 낯선 사내를 들일 수는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여인이 머뭇거릴수록 경염의 속이 바짝 탔다.

“정왕 전하.”

부르는 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건평이었다. 경염으로서는 사내가 낯설었지만 그는 이미 경염을 알고 있다는 듯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렸다. 따라 오십시오. 그의 정체가 무엇이던지 간에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 줄 사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종주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한 번 와봤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어지럽군. 자세엔 하나 흐트러짐 없으면서도 경염은 때 아닌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내딛는 걸음마다 드는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매장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쓰러졌단 말인가. 종주. 혹여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애틋함이 넘실거리는 탓에 오는 두통이었다. 생각하지 말자. 마침표를 찍는 마음에는 이성이 없다. 멈출 수 없는 생각의 끄트머리는 여전히 그를 향했다.


도대체 왜, 또 무엇이. 그리고…얼마나.


얼마나 걸었을까. 사내가 열어주는 문 안으로 쏟아지는 뛰어 들어가니 이미 온 손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뒤 돌았다. 한 명의 얼굴은 낯이 익었다. 린신. 매장소가 쓰러졌단 소식에 그도 한 달음에 나선 차 였다. 옆에는 백발이 희끗한 노인이 서 있었는데 하얀 가운 차림인 것을 보니 의사인 듯 했다. 경염은 늦은 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보시다시피 누워있지 않습니까.”

심드렁한 말투에는 경중이 없어 경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앓아누웠는데 지인이라는 자가 이토록 무심해서야. 린신에게 오래 둘 눈길은 없었다. 경염은 창백한 낯빛으로 누워있는 매장소를 바라보며 다시 숨을 삼켰다. 스스로가 깨닫지 못했을 뿐, 오늘만 해도 여러 번 숨 쉬는 법을 잊었다. 주검처럼 누워있는 얼굴은 핏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이 하얗게 질린 채였다.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떻게 된 거요. 원래 몸이 약한 것이오? 아니면 화를 당했다던가…. 혹 모르는 이에게 해를 입은 것은 아니냔 말이오.”
“하나씩 물어보셔야 대답을 할 것이 아닙니까.”

린신은 혀를 쯧, 차고는 마찬가지로 매장소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의 잠든 얼굴은 지긋지긋 했다. 식물인간이 되어 1년을 꼬박 잠든 얼굴만 지켜봤으니 평생 볼 얼굴을 그때 다 봤지 않나 싶다. 보는 사람은 이리 속이 말이 아닐진데, 말귀라곤 들어먹을 생각을 않고 기어코 낭패를 본다. 린신은 애초부터 매장소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정왕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종주는 ‘화한독(花閒毒)’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화한독?”
“곤(坤)족에게서만 볼 수 있는 증세입니다. 곤족은 예로부터 화(花)족이라고도 불려왔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난 꽃이지요. 화한독은 곤족 중, 성인이 되기 전에 걸리는 독입니다. 제대로 피기도 전에 음액(淫液)을 받아들이면 덜컥 독에 중독되고야 말지요.”
“음액? 그것은 또 무엇인가.”
“정액 말입니다.”

쯧, 하고 다시 혀를 내 찬 린신의 뒤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경염의 눈이 흔들렸다. 그런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것이 당황스러웠고, 너무나 사사로운 개인의 비화(秘話)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이 놀라웠다.

“쉽게 말해 곤족이 개화(開花)하기 전에 사내를 받아들이면 걸리는 독이란 말입니다. …뭐, 종주의 과거사 까지는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오직 종주만이 알겠지요.”
“……고치거나 나을 수는 없는 병이오?”
“화한독이 기승을 부리면 혈기를 눌러줘야 하는데, 곤족 또한 인간인지라 과중한 일에 시달리거나 마음이 편치 못하면 혈이 막히게 되어 지금처럼 갑자기 쓰러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야 혈기를 풀어주면 그만이지만 너무 자주 혈을 건드리면 나중에는 혈관이 서서히 막혀 죽음에 이를 수도 있으니…….”

희미해지는 말미에 경염의 표정 또한 점차 어두워졌다. 이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고, 병을 앓고 있는 줄은 더더욱 몰랐다. 어찌됐든 지금은 쓰러진 사내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경염은 물끄러미 잠든 그의 얼굴을 살폈다. 살폈다기 보다는 헤아림에 가까운 시선이 한없이 깊고, 복잡했다.


그 얼굴을 넌지시 보고 있던 린신은 눈을 감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고야 있지만 말할 수는 없는 매장소의 과거지사를 떠올려보면 그로서도 통탄할 뿐이다. 운명이 참으로 잔인하기도 하지. 자신은 어차피 방관자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겠지마는 오랜 벗이 앓고 있는 병을 고칠 길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매 한가지였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전하, 설마 종주가 쓰러졌다는 소리에 달려오신 겁니까? 아니면 따로 나눌 말씀이 있으셔서….”
“할 말이…. 할 말이 있어 왔을 뿐이오.”

거짓말이었다.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거짓말. 그러나 지나가는 말일지라도 진실을 말할 순 없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쌓아 둔 마음의 벽이었다. 그를 지켜보던 린신은 알 듯 모를 듯한 눈길을 가늘게 떴다.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허나 기든 아니든 묘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는 슬슬 물러나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아마 한 시간 안에는 깨어날 겁니다. 상황이 워낙 촉박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어디까지나 환자이니…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아 주십사, 하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소.”
“아무렴, 물론 그러시겠지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린신과 주치의가 발길을 돌려 나가고, 입구를 지키던 건평마저 허리를 숙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두 빠져나갔다. 방 안에 남은 것은 오직 경염과 아직 눈을 뜨지 않은 매장소. 단 둘뿐이었다.


경염은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아예 자리를 잡았다. 시선은 내내 죽은 듯 누워있는 사내에게 닿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잠들어있는 얼굴이 너무 평온해 보여 그가 병자라는 것을 잠시 잊을 뻔 하다가도, 득달같이 달려드는 린신의 목소리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화한독. 아직 채 피지 못한 꽃이 사내를 받아들여 걸리는 독이라….


혼란스러운 이유를 아직 간파하지 못했다.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이 자꾸만 사내의 주변을 돌며 서성거린다. 만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사내에게 주기에는 지나치게 애틋한 마음이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경염의 눈은 저절로 감겼다. 무거운 생각을 이기지 못한 머리가 두통을 호소했지만 돌볼 여유가 없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과거의 잔상에 사로잡혀버린 탓이다.




딱 한 번, 임수와 정(情)을 통한 적이 있다.




풋정이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마음이 열화처럼 타올라 소년들을 활활 이는 불길 속으로 던졌다. 그는 어렸고, 소년 또한 어렸다. 성숙하지 못한 몸과 마음이 그저 서로를 향한 섣부른 애욕으로 다급했다. 덜 익은 주제에 넘치기만 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눈앞의 하얀 소년을 탐식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 들끓었다.


그는 어렸다. 소년 또한 어렸다. 만약 살아있었더라면 임수 또한 독에 중독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경염의 눈이 서서히 열렸다. 파르르 떨리는 기다란 속눈썹이 그가 온통 흔들리고 있음을 증명했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나는, 그대를 보는 것이 이토록 괴로운가. 분명 아름다운 사내이지만 제 첫 정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품고 있는 향내 또한 달랐고, 흘리는 미소에서부터 몸짓, 분위기.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묻고 살았던 그리움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괴롭다. 자꾸만 생각나게 하여 재촉하듯 저를 부추긴다.


위(位)에 올라 시뻘겋게 타오르는 태양을 맨 손으로 안으라 한다. 수 백 번을 다짐했다. 네가 원한다면 그리 하겠다. 내 몸을 전부 불살라서라도 너에게 했던 맹세를 지키라 한다면 역시 그리 하겠다. 나도 너처럼 타 죽을 수 있다면 그마저도 우리의 동행이라 여기겠다.




그러나, 너는 돌아오지 않는다.
태양은 끌어안아도 너만은 안을 수 없다.
더 이상, 이 두 팔로는. ……너를.




이 사내는 대관절 누구이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연정의 흔적을 들추려 하는가. 시각은 어느새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경염의 시선은 하염없이 매장소만을 쫓고 있었다. 그에게로 향하는 눈길을 가눌 길이 없다. 경염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잘 뻗은 인중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숨이 제 것이 아닌 양 낯설다. 그리고 또 다시 숨을 끌어 모았을 때.



매화…….
이 향기는, 매화(梅花)다.



처음 본 날에도 느꼈던 향기가 공간 안에 자욱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향기 한 가운데에 있었다. 강렬하다. 설원에 홀로 핀 새붉은 꽃송이가 강렬한 색채를 뽐내며 제 존재를 과시한다. 어쩌면 홀려버렸는지도 모른다. 린신의 경고는 이제 떠오르지도 않았다. 홀린 뒤에는 후회를 한들 늦었기 때문일까.


경염은 이불 위로 가지런히 놓인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매끄럽고 하얀 손은 문지르면 그대로 녹을 것처럼 부드러웠다. 사내가 품은 향은 온 몸 어디에서도 빠짐없이 풍겨져 나와 경염을 어지럽혔다.

“……….”

잡은 손의 엄지가 사내의 손등 위를 스윽, 문지르는가 싶더니 서서히 얽히기 시작했다. 붙잡고 있음에도 날아갈 것만 같아서.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무뚝뚝한 남자의 성정마저도 단번에 무너뜨린 황홀한 감각. 슬그머니 들어간 손가락이 손등을 거쳐 팔목을 붙잡았다. 이 무슨 무례한 짓인지. 자는 사람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툭 불거진 손목뼈를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스르륵, 움직여 위로 향했다. 위로, 점점 위로. 사내의 소매 안으로 제 손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경염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향기에 홀린 것일까. 아니면……. 들어가기를 멈춘 손이 올라갔던 그대로 다시 미끄러져 내렸다. 다시금 붙잡은 손. 숨을 들이킬 때마다 딸려 들어오는 향기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갇혔다. 향기로 만든 감옥에 갇힌 것이다. 곤족이 풍기는 향기야말로 중독이었다. 자욱한 안개처럼 저를 휘감는 유혹에 경염은 굴복했다. 탐(貪)하고 싶기 때문이다.




딱 한 번,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 있다.




그때에는 너무나 어렸다. 몸도 마음도 채 여물지 못했고, 충동은 날것처럼 시퍼렇게 뛰었다. 심장 박동이 쿵쿵 거리며 박자를 셀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욕정이 그를 흔들었다. 앞뒤 가릴 새도 없이 소년에게 뛰어들었다. 입술부터 밀고 들어가 무작정 하얀 그를 탐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소년이라 불릴 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 잔 근육이 즐비해 진 단단한 몸과, 그 아무도 허물어뜨릴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마음으로 무장한 뒤였다. 그렇다고 믿었는데. 이리도 쉽게 무너지고 흔들릴 줄이야. 경염의 눈은 이미 애욕으로 젖어 번들거렸다.




갖고, 싶다.
탐하여, 얻고 싶을 뿐이다.




경염은 그의 손등 위에 기꺼이 입을 맞췄다. 맞닿은 순간은 찰나였지만 떨어지기까지는 영겁이었다. 비로소 굴복했다. 그의 안으로 스며들어간 매화 향기가 지독한 열병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움과 죄책감. 붙잡지 못한 것에 대한 소유욕과 안지 못하는 자에 대한 미련. 경염은 손가락이 얽히도록 두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사내의 위를 덮은 뒤였다.



“눈을 떠.”

잠들어 있지 말아. 나는 그대의 숨이 언제 끊길지 몰라 그저 두렵다.
왜 두려운지도 모른 채.



“…나를 봐다오.”



지금 느끼고 있는 충동이 무엇인지는 종래토록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경염은 예감했다. 과거의 정인과 겹쳐 보이는 사내를 향한 무례를, 아마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모르지 않았다. 경염의 손이 떨리도록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내려갔다. 미끄러지는 감촉은 붙잡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그때, 매장소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만연하게 퍼졌던 향기가 순간 긴장했다. 다시 제 주인에게 훅 빨려 들어올 것처럼 이 기묘한 시간을 위축시켰다. 이 홀림도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다. 경염은 그제야 제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장소의 입술이 속삭이듯 달싹거리기 전 까지는.



“……경……염.”




홀린다. 홀렸다. 사로, 잡힌다.




경염의 손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유유히 흘러가던 공간은 급제동이 걸리고, 내리 치다시피 한 손길에 침대가 크게 출렁거렸다. 힘이 실린 손등 위로는 핏줄이 불거졌다. 이로써 완벽히 그를 가둔다. 설령 매장소가 눈을 뜨더라도 상관없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늘씬하게 뻗은 남자의 뒷모습이 잠들어있는 사내를 완벽히 가렸다. 심지어 구두도 벗지 않고 올라 탄 경염의 무례함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터질 듯, 억지로 누른 뜨거운 숨을 제어하기에도 바빴다. 이건 미친 짓이다.


…하지만, 멈추지도 못할 것이다.


지금 저를 조종하는 것이 본능인지, 아니면 쾌락을 쫓기 위함인지 불분명했다. 차라리 눈을 떠 제 뺨이라도 후려친다면 속이 시원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그것을 견딜 수 없어. 당장 눈을 떠 설명하기를 바란다. 제가 느끼고 있는 이 충동이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어째서 그 입에서 제 이름이 흘러나왔는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아스라한 부름은 애틋했다.

마치 절정의 와중에 겨우 내뱉은 이름처럼 위태로웠다.


그가 부른 제 이름이 말이다.


경염의 입술이 하얀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굶주린 짐승이 아귀를 벌리고 저를 자극한 냄새의 근원에 코를 묻고 삼킨다. 당장이라도 옷가지를 벌리고 그 몸을 제 것처럼 주무르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부르도록 하고 싶었다. 오롯 저만을 바라보며, 그 눈에 자신을 담고. 그의 모든 곳을 저로 채워 넣기를. 지금만큼은 예의도, 절차도. 모두 잊혀진 관념에 불과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경염이 매장소의 턱을 움켜쥐었다. 마치 처음 봤던 그날처럼.


그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제 흔적만을 남기기 위하여.





“멈춰.”



그러나 입술이 채 닿기도 전에 서슬 퍼런 목소리가 그를 붙들었다. 둘 밖에 없는 줄 알았던 공간에 누군가 기척도 없이 스며들어 있었다. 심지어 바로 제 등 뒤에 있었다. 목소리 다음은 칼날이었다. 목 깊숙이 들어 온 날카로운 칼끝에는 다분한 위협이 서려있었다. 쇠 비린내가 진동하는 목소리였다. 동시에 아직 덜 여문 풋풋함이 역력했다.



“안 멈추면 죽어. ‘물소’.”



그 정체가 무엇이건 상대는 진심이었다. 스르륵 풀리는 손길과 동시에 경염은 몸을 일으켰다. 일국의 황자를 응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접대였다. 경염의 고개가 뒤를 향했다. 제 목에 칼을 들이 댄 무뢰한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너, 방금 나를 뭐라고 불렀지?”

경염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낯선 소년의 모습이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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