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방 皇惹房

~15일의 기록~


07








10일 전.

사라진 교지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모두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뿐 각기의 입장은 시끄러웠다. 공산당 중 일부는 명분뿐인 황실의 존폐 여부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당파 중에서도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 황실. 그 네 글자만으로도 위압감을 지닌 황실의 역사는 그야말로 유구했다. 그들 역시 이 나라의 국민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그들일지 모르나, 그로 인해 오랜 전통을 폐하자는 것은 대다수의 국민 정서에도 규합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이 황실의 대를 여기서 끊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국민 여론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여론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다. 중국 황실. 그 네 글자가 주는 존재감은 생각보다 깊숙이, 그들의 문화와 정서에 뿌리 박혀 있었다. 황실 은폐의 주장은 그대로 묵살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어떻게’ 다음 황제를 가릴 지에 대한 방법 여부였다. 사라졌던 황제의 교지가 나타나만 준다면야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았다. 불확실한 결과를 기다리며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에겐 시간이 없었다. 고작 10일. 즉위식은 열흘 후로 다가왔다.

“도대체 수사 기관은 뭘 하고 있는 거요? 이렇게 진척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언제까지 머리만 맞대고 있을 작정이요!”
“진정해요. 우리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교지가 사라진 것은 선황이 죽기 바로 전 날. 오늘 내일 하고 있는 그의 목숨이 고비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중앙궁과 예왕부, 정왕부 등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들에서 주요 전력이 잠시 차단되는 일이 있었다. 그 시간은 불과 5분 여 남짓이었기에 아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전력 공급이 중단된 건물 중에 현경사의 건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지를 담은 목반은 현경사의 건물 지하의 특수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cctv를 아무리 돌려봐도 사람이 드나든 장면을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cctv 기록이 없는 시간은 정전이 된 5분이 전부였다. 범인은 어찌나 교묘한 수법을 썼는지 현장에도 증거 하나 남기지 않았다. 교지만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신출귀몰한 범행에 귀신의 소행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5분 안에, 그 철통같다는 현경사의 경비를 뚫고 금고를 열어 목반 안에서 교지만 빼낼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제대로 훈련을 받은, 그리고 내부의 사정에 밝은 이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제일 먼저 의심을 받은 것은 역시 현경사였다. 그러나 현경사 전원의 알리바이가 확실했고 증거 또한 찾을 수 없었다. 책임자인 하동은 물론 그날 지하 경비의 책임자였던 하춘까지 탈탈 털었지만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보안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범인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답답하구려. 이걸 대체 어떻게….”
“…차라리 당원 투표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허! 이 사람 정말 모를 소리! 다른 것도 아니고 황제의 자리일세. 그 자리가 어떤 줄 모르는가?”

괜한 얘기를 꺼냈다가 된통 한 소리 들은 젊은 공산당원의 어깨가 수그러들었다. 정말로 멍청한 소리였다. 투표로 뽑을 수 있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황실, 최고 수장이라는 황제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실질적인 정치 참여가 불가능하다 해도 여론을 움직이는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자리이다.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는 정치 세력보다 기반이 단단했다.


천자(天子). 하늘이 내린 자리이며 핏줄이 아니면 제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감히 오를 수 없는 자리였다. 누구나 다 탐낼 수 있는 자리였다면 국가 주석이 들어가 꿰차면 될 자리였다. 허나 그럴 수 없는 자리가 아닌가.

“나는 현경사보다도 정왕 쪽이 더 의심스럽지 말입니다.”
“정왕이? 허, 지금까지 죽은 듯 살아왔던 황자요. 황위 계승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죽은 기왕이 시킨 일이라던데. 그 자가 황위에 뜻이 있긴 합니까?”
“저번에 대 회의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그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정왕은 본래 성정이 대쪽 같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그런 것일 테지요.”

의견이 분분했다. 정왕은 지금까지 그들의 안중에도 없던 황자였다. 이렇다 할 욕심을 내보인 적도 없었고 행보 또한 불분명했다. 이를테면 황실의 정물 같던 존재였다. 스스로 황궁을 나가 인생의 절반을 거기서 머물렀던 사내.


그런 자가 이제와 황위를 탐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모두의 머릿속에는 저번 대 회의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또한 자격이 있는 황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봤자 황제의 자리에는 예왕이 오르겠지만.

“예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썩 탐탁지 만은 않습니다. 예왕은 욕심이 많은 사내요. 훗날 정치판에 끼어들려고 한다면….”
“그래도 죽은 기왕 보다는 예왕이 훨씬 낫지요. 공공연히 황족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던 골칫덩이였으니 말입니다. 사가로 보내버려 속이 다 시원했는데, 거기서 갑자기 죽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냐만은…. 주석께서는 이 일을 두고 어찌 생각하신 답니까?”
“지금 회담으로 미국에 가 계시지 않습니까. 아직 소식도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다들 그만 두시구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다음 황제를 세우느냐, 이거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모두들 침묵했다. 열흘 앞으로 다가 온 즉위식. 그 전에는 필히 대안을 세워야 한다.



“혹시 모르니 현경사와 정왕부를 주시하고 있어야 할 게요. 예왕은 내가 직접 만나 보겠소.”



주석 다음으로 당을 이끄는 사내는 사옥이었다. 그는 아직 젊지만 교활한 여우를 떠올렸다. 예왕. 그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고. 그의 말을 끝으로 소득 없는 회의는 해산을 알렸다. 사옥 역시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내실에는 오롯 두 사람뿐이었다. 어딘가에는 모습을 숨긴 어린 호위가 있을 테지만 평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그가 유독 꺼려하는 린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오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린신은 손수 참빗을 들어 길게 자란 매장소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치렁치렁 한 게 불편하지도 않느냐 핀잔을 주면서도 손길만은 정성스러웠다. 요즘 줄이겠노라 선포한 담배 대신 물고 있는 성냥개비가 입술 끝에서 달랑거렸다.

“어쩔 생각이야.”
“무엇을 말인가.”
“허, 참. 정말. 속 답답하게 구는 데는 네가 최고지. 노벨 답답상 이런 건 없나?”
“쓸데없는 소리.”

린신의 농을 한 마디로 일축한 매장소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위협이라도 하려 했는지 손에 반짝 들어간 힘도 마지못해 푸는 린신의 손길 역시 다시금 부드러워졌다. 이곳에 가만 앉아 세월을 보내고 있으려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바깥세상은 총칼 없는 전쟁이 한창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그러고 보니…. 정왕의 낌새가 이상한 것 같던데.”
“……….”
“나 모르게 둘이 배라도 맞춘 건 아니냐? 너 쓰러진 날 잠깐 봤다. 할 말이 있어서 왔다는데 할 말은 무슨. 얼굴에 나 놀랐어요, 하고 다 써놓고선….”

린신은 하던 말을 멈추고 매장소를 빤히 바라봤다. 신경질적으로 돌린 몸과 노기가 서린 표정을 보아하니 제 실없는 농담을 이번에는 어여삐 넘겨주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린신은 껄껄 웃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무엇에도 감흥이 없는 사내가 경염의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이리도 눈에 불을 켜니 농짓거리를 아니 할 수가 없다.

“린신, 설마 경염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 건 아니겠지?”
“내가 뭘. 그냥 너 괴롭히지 말라는 소리나 했지.”
“농담 아니야. 내가 잠든 사이에 혹시 그에게….”
“화한독(花閒毒)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매장소의 눈이 커졌다. 화한독에 관한 이야기를 대체 왜. 린신의 손에서 참빗을 뺏어 든 매장소가 벌떡 일어섰다. 덕분에 그의 긴 머리카락이 아래로 출렁, 떨어졌다. 마냥 곱기만 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도 볼만 하구나. 린신은 벌러덩 누울 듯이 몸을 뒤로 낮추곤 느긋한 표정으로 매장소를 올려다봤다. 성깔 하고는…. 너 이런 거 정왕도 아냐?

“경염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랬지.”
“왜. 또 거짓말 했느냐? 그냥 빈혈이라고. 감기라도 걸렸다고?”

정곡을 찔렸다. 매장소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내를 생각하는 네 마음이 갸륵한 것은 알겠는데, 나는 그런 방식 별로야. 그럴 거면 아예 나타나질 말든가. 얼굴이 바뀌고, 향기가 달라졌다고 해서 정왕이 정말 모를 것 같으냐?”

그날, 정왕의 얼굴은 평범하게 걱정을 하는 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사색이 다 되어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꼭 어린 아이 같더라. 아닐 거라 생각은 하면서도 가능성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만약에 정왕이 매장소의 정체를 눈치챈다면. 그가 바로 어릴 적 불타 죽은 줄 알았던 임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에는 어쩌려고 이렇게 거짓말을 해대는지 린신은 알지도 못하겠거니와 이해 할 수도 없었다.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일은 다 하는 삼합회의 간부라지만 상관없이, 그는 거짓말을 싫어했다. 모든 불행은 거짓말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요 맹꽁아.

“경염은…. 황제가 되어야 해. 그가 황제가 되어야만, 기왕 형님의 죽음과 곤족의 몰살에 대한 사건을 재조명할 수 있다.”
“그걸 내가 모르나? 그런데 왜 아닌 척 하는 거냐, 이 말이지.”
“……내가 임수라는 것을 경염이 알면.”

매장소는 문득 말을 멈췄다. 한 번에 회상하기에는 지난 과거가 너무나도 길고, 멀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될 거야.”

나를 위해서. 그는 그런 사내이니까.



“…허이고, 열부 나셨네. 열부 나셨어.”

비꼬아대는 린신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온 몸이 불타 인간으로서는 재기가 불가능했던 시절. 아버지들 간의 인연으로 저를 구해 준 린신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살려준 것도 그였고 죽도록 고통스러웠던 재활 기간 동안 곁을 지켜준 것도 그였다. 그가 꾸려오던 랑야관을 내어준 것도, 종주로서 정치판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 역시 린신이었다.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지는.

“약속이나 지켜.”
“……….”
“모든 게 끝나면 네 인생을 사는 거야. 너는 그래야만 해.”
“……알고 있어.”
“나는 매장소의 친구이지, 임수의 벗이 아니야.”

딱 잘라 구분 짓는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었다. 임수와 매장소. 졸지에 두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그의 기구함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린신 또한 그 점을 이해하기에 지금은 고집을 굽히는 것뿐이다.

“……알고 있네.”
“그러면 그런 얼굴 좀 하지 말지? 세기말 로맨스의 유일한 관람객이긴 해도 로맨스는 내 정서 아니거든.”

심드렁한 얼굴로 재킷을 걸쳐 입은 린신은 아까보다 한층 어두워진 매장소를 보며 혀를 쯧쯧 내찼다. 몸은 약해도 속에 깃든 알맹이는 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내가 정왕의 이야기만 나오면 이리도 서글픈 얼굴을 하니. 이래서야 어디 농담이나 할 수 있겠냐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던 린신은 매장소의 뒤로 다가와 그의 머리를 틀어 올려 주었다. 슥슥 움직이는 손길이 무성의한 듯 보여도 여러 번 해 본 티를 내며 익숙하게 그의 머리를 매만졌다.



“내 취향은 액션이야. 명심하라고.” 


여차하면, 내가 나서서 다 때려 부술 거니까.



씩 웃은 린신이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동안, 매장소는 미뤄 둔 한숨을 내쉬었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진심이다. 일이 잘못 되면 그가, 아니 그의 뒤에 있는 삼합회가 움직일 것이다. 천지회서부터 시작된 삼합회는 전적으로 민주당의 편이었으며, 민주당은 정치 기반은 약해도 이 큰 대륙의 돈줄을 쥐고 있는 재벌가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의원석만 보면 절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는 민주당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도 그에 있다.


매장소는 일어나 창을 활짝 열었다. 이제 정녕 봄이 오는 모양이다. 바람은 겨울의 기색 하나 없이 그의 곁을 살랑거리며 스쳐 지났다.

“봄이라…….”





영영 다시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계절이다.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임수는 죽었다. 기왕의 죽음을 슬퍼하느라 여념이 없던 날이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불길 한 가운데에 있었다. 아무도 그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거기에 소년이 있기는 했냐는 듯이. 점점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불길이 뜨거웠다. 열기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입을 틀어막아도 새어 들어오는 탄내에 오장육부가 비명을 질렀다. 임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경염, 경염……!



점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떠오른 이름은 죽은 아버지도, 이 혹독한 세상에 저를 두고 먼저 간 기왕 형님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아예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오직 경염, 그의 이름이었다. 돌아온다고 했었지. 계란만한 진주를 들고 말이야. 그런 것들은 다 필요 없으니 그저 그가 보고 싶었다. 살아서 이 불길을 헤치고 와주길 바란 뜻은 아니었다.


행여나 그런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 그렇지만 한 번, 딱 한 번만. 보고 싶었다. 만질 수 없어도 좋으니 보고만 싶었다. 점점 커지는 불길 속에서 임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눈을 감으면 보일 테니까.


떨림을 감추지 못하던, 그러나 오직 저에게로만 향하던.
눈빛. 그날. 너.



제 위로 쏟아지던 경염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완강히 버티고 선 팔은 아직 근육이 덜 붙어 저와 비슷했지만 금세 남자가 될 줄 알았다. …뜨겁네, 경염. 기억 속의 저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두려움은 순간이었다. 불타던 마을과 그 안에서 울부짖던 사람들의 비명 또한 찰나의 환청이었다. 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무섭지 않아. 떨리는 손으로 제 잠옷을 벗기던 손길을 내려다보던 임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 역시 떨렸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기쁘다. 생애의 처음을 그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쏟아지는 입술은 서투르고 뜨거웠다. 발발 떠는 열기가 저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판가름하기 어려웠다. 아! 빛보다 빠르게 스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놀란 마음에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곧 소용없어져 버렸다. 그의 입술이 목을 지나 가슴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이미 다리 사이까지 축축이 젖은 뒤였다. 마음처럼 절절 새나오는 젖은 가랑이가 부끄러워 허리를 뒤틀었다. 그러면 저를 누르는 그의 무게가 괜찮다는 듯 다독거렸다.


입을 틀어막는 것 대신 이불을 쥔 손이 시트를 구긴다. 들썩거리는 몸은 아무리 해도 침착해 질 줄을 몰랐다. 간지러워, 간지러워…경염.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터질 듯 달아오른 얼굴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나면 득달같이 쫓아온 그의 손길이 저를 붙잡고 애 닳는 키스를 퍼부었다.


손길이 곳곳을 어루만졌다.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닿지 못할 곳 또한 없었다. 하염없이 밀려나오는 숨만 턱, 턱 내뱉는 것이 고작.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제 가슴을 빨고 있는 그의 머리통을 감싸 안았다. 둥글게 말린 몸이 어떻게든 그와 닿지 못해 안달을 했다. 화끈거리는 다리 사이의 열기가 발가락 끝까지 흘러가 곱아들었다. 어떡하지, 경염. 정말 어떡해야 하지.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흐아, 으…. 흐, 읏, 으…!”
“수, 샤오수.”


키스만큼 쏟아지는 이름이 달큰하다. 그에 취해 허리를 흔들었다. 덜 자란 허리가 낭창하게 휘었다.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는 온 몸을 아우르는 애무에 취한다. 엉덩이를 움켜쥐는 손길이 사뭇 대담하다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모른 척 했지만 모른 적은 없었다. 앞날을 예상할 수 없어 두렵긴 하지마는 한 번도,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여전했다. 제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하던 순진한 소년. 저를 어찌 다뤄야 할지 몰라 늘 전전긍긍이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무서워 할 까닭이 없었다. 감았던 다리가 서서히 풀어졌다.



괜찮아, 너니까. 다, 괜찮아.



임수는 웃었다. 웃는 것밖에는 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그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질끈, 감기는 눈. 한 번도 출입을 허락한 적 없던 몸이 열리는 것을 느끼며, 맹세한다.



나도 다 줄게, 너에게.
……전부를, 다. 너에게.



상념에서 깨어난 눈이 뿌옇게 흐려졌던 시야의 초점을 바로 잡는다. 문득 문득 끼얹는 기억들은 여전히 멀고, 또 가깝다. 한 순간도, 단 하나도. 잊은 적 없기 때문이다. 매장소의 시선이 문득 협탁으로 향했다. 그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은 며칠 간 잠잠했다. 지금부터는 아닐 것이다. 이제, 움직일 때가 됐다.


부디 이 풍랑에 휩쓸리지 않고, 그가 무사하길 빌어본다.





너는 태양이 되어야 하니까.
아무도 너를 해할 수 없는, 오롯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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