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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샘플 페이지로 일부 미리보기만이 수록 됩니다. 

(중간에 끊어지는 부분은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Episode 1

오메가버스 (알파오메가) 



알파¹

 

알파란 우수한 유전자를 뜻하며 사회 최상위층 계급군에 존재한다. 따라서 부와 권력을 쥔 계층들이 이에 속한다. 알파는 상대가 오메가일 경우 본인의 성(姓)과 상대방의 성(姓)에 관련 없이 임신시킬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동성간의 임신도 가능하다. 이들은 오메가들이 반응하는 특유의 힘을 지녔다. 관계(sex) 시, 거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다.

 

오메가¹

 

사회 최하위층 계급군에 속한다. 이들은 대개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으며 절대적인 약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알파와 오메가는 계급군 자체가 나뉘어진다. 오메가는 상대가 알파일 경우 본인의 성(姓)과 상대방의 성(姓)에 관련 없이 임신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동성간의 임신도 가능하다. 이들은 알파들이 반응하는 특유의 힘을 지녔다. 관계(sex) 시, 상대가 알파일 경우 휘둘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베타¹

 

아주 평범한 사람들 (=머글)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대개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며 알파나 오메가가 내뿜는 호르몬(페로몬)을 눈치채거나 알아차릴 수 없다.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서만 반응하게 되는 구조이다.) 물론 오메가가 히트 싸이클일 경우 알파가 아닌 베타에게 매달릴 수도 있겠지만 알파처럼 섹슈얼함에 노출되거나, '거의 반 미친' 상태로 섹스를 하거나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RAINY DOGGY

J.WOO-HYUK x A.SEUNG-HO






개를 주웠다.


비 오는 날이 질색인 이유는 공기 중의 습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장마철이면 유독 아무 것도 못하겠는 것도 마찬가지인 이유다. 기껏 널어놓은 빨랫감이 마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옷가지들 대신 빨래집게에 걸린 양 축, 축 늘어지는 몸이 맥을 못 추고 침대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침대도 축축하다. 더위보다 추위를 못 견디는 몸에 에어컨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이 날씨에 창문을 열 수도 없고, 반대로 난방을 틀수는 더더욱 없다.


그런 이유로 더위보다는 추위에, 추위보다는 습기에 약한 남자의 기분은 4일 째 내리 저조했다. 자그마치 4일 째. 끔찍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는 산사태가 났더라. 어느 대학교 도서관은 갑자기 무너져서 책이 다 젖었다더라. 뉴스에서 시종일관 떠드는 홍수 피해는 그의 저조한 기분과 비례 하여 나날이 급증하고 있었다. 작작 좀 했으면. 남자는 보란 듯 미간을 찌푸리며 티스푼을 휘휘 저었다. 이 계절에 유일하게 허락된 따뜻한 음료라곤 코코아뿐이다. 단 걸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바닥에 남은 알갱이들을 휘휘 저으며 자리에 앉은 남자의 가운이 의자 밑으로 축 늘어졌다. 이런 날에는 찾아오는 발걸음도 드물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까. 남자가 비오는 날을 싫어하는 이유는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만큼 차고 넘쳤지만 그중에서 제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역시 그의 낡고 허름한 개인 진료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많아진다는 데에 있었다.


비오는 날은 다 같이 미치기로 작정한 날인가. 배가 찢어져 오거나, 부위 식별이 불가능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오거나, 아니라도 어디 한 군데는 꼭 부러뜨려서 오는 녀석들이 줄을 지었다. 하나같이 주먹 좀 쓴다는 뒷골목 양아치 나부랭이들이다.


배때지에 칼심 박아 넣은 채로 병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곳으로 오는 건 알겠는데……. 그건 니들 사정이고. 치료비라도 제대로 주고 가면 또 몰라. 조금 괜찮아졌다 싶으면 바로 입 싹 닦고 튀는 놈들만 해도 역시 한 트럭이다.


그럼에도 특별히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건 어차피 또 볼 놈들이기 때문이다. 튀어봤자 의사 선생님 손바닥 안. 니들이 어딜 갈 수나 있겠어? 그러니 진료소 재방문 시에는 현금을 들고 오시오. 카드 결제 따위가 될 리 없는 야매 진료소에서는 죽기 싫으면 지갑이 두둑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물론 남자도 그에 동의하고.


아무리 말은 이렇게 해도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는 맘씨 좋은 의사 선생에게 한 번만 봐 달라며 비벼대는 놈들 역시 한 트럭은 되었지만.


아무리 야매라고 해도 의사는 의사. 남자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창문 너머를 흘끗거렸다. 이상하네. 밤 12시가 넘어가는 데도 어째 오늘은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웬일로 다들 정신 차리셨어? 그러시든가. 남자는 코코아를 홀짝 거렸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며.


그러니까 지금 들은 소리는 환청일 거야.


쿵. 낮고 둔탁한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금세 희미해졌다. 잘못 들었나?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으므로 남자는 코코아를 마저 홀짝거렸다. 역시 에어컨을 틀까봐. 26도에서 내려가는 법이 없는 에어컨을 틀고 tv의 볼륨을 높인다. 내가 귀신같은 걸 믿는 건 아니야. 무서워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리고 다시 쿵.


지금 으슬으슬한 건 에어컨 때문이겠지. 남자는 가운을 바짝 끌어당겼다. 머리로는 아무리 아니라 해도 바짝 날이 선 신경은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다. 동글동글한 눈이 뾰족 선 고양이털처럼 삐죽거렸다가 절레절레 내젓는 고갯짓에 다시 내려앉는다. 볼륨을 좀 더 올렸다. 나는 아무 것도 안 들린다. 아무 것도 못 들었다. 가나다라마바사…. 진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쿵.


“shit!”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야 무시를 할 것 아닌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움츠리고 있던 어깨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무슨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문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이는 곧 귀신보다는 인간의 소행일 확률이 높았다. 누구는 귀신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데, 남자는 그 반대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진료소 문을 두드리는 조폭 놈들을 상대하다 보면 쨀 수도 있고, 꿰맬 수도 있는 인간이 무서울 턱이 없었다. 남자는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이럴 줄 알았지.”


몰랐으면서. 남자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어째 조용히 넘어가나 했다. 굵은 비가 쏟아지는 배경을 두고 웬 처음 보는 사내가 문간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다. 이마가 깨지신 모양이네요. 손님. 그런데 꽤 위험한 상태이신 것 같고요?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의 반쪽이 피로 덮여 있었다. 팔도 나가셨고 다리에 금도 좀 나셨고요.


내 신세야. 지금으로선 한탄할 시간도 없었다. 일단 사내의 팔을 당겨 겨우 어깨동무를 걸친 남자의 입에서 끄응, 신음이 절로 터졌다. 내리는 비를 혼자 다 빨아들였는지 축축한 비와 피로 젖은 사내의 무게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남자는 이를 꽉 물었다. 이런 날에는 할증이 붙어요. 손님. 12시 넘으면 택시에도 붙잖아. 그런 거. 남자는 질질 끌다시피 사내를 데려다가 기어코 침대 위에 눕혔다.


벌써 뒈진 건 아니겠지. 젖은 가운을 휙 벗어 의자에 처박듯 던진 남자가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이거 아주 일당백이네. 한 큐에 몰빵한 오늘의 운세가 새벽부터 꼬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젖은 셔츠를 가감 없이 옆으로 펼쳤다.


아주 길고 긴 밤이 되겠어. 하필이면 비오는, 그래서 끈적거리는 밤에.

개가 찾아왔다.




▶▶




“또 왔어?”


승호는 보자마자 대번 미간부터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주만 해도 벌써 세 번째 방문을 기록하고 계신 그의 단골손님께서 오늘은 또 무슨 핑계거리를 들고 오셨을 지가 사뭇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삐딱하게 선 승호가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는 동안, 개는. 아니 우혁은 그저 그를 멀뚱히 바라보며 눈만 깜박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쨌든 환자고 손님인데 이런 식의 대우는 부당하지 않느냐는, 뭐 그런 뜻이었던 것도 같다. 승호는 결국 포기하고 먼저 돌아 들어갔다. 어쩐지 요즘 손님 떨어지는 것도 이 녀석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개야. 오늘은 어디가 다치셨다고?”

“장우혁.”

“응, 개야. 혹시 배탈이라도 났어요? 우쭈쭈?”


다소 좋지 못한 취향일 수도 있겠는데 저 표정 하나 없는 얼굴에 가끔씩이라도 금이 가는 게 좋아서. 승호는 일부러 더 그를 골려대곤 했다. 매번 인상만 찌푸렸지 마땅히 제재를 하지 않는 우혁에게도 책임은 있다. 승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대일밴드를 집어 들었다.


“어디 보자. 손가락이 다치셨을까~. 아니면 감기에 걸리셨을까~.”


그런 승호를 지그시 바라보던 우혁은 말없이 재킷을 벗었다. 밴드의 포장을 살금살금 벗기고 있던 승호의 눈이 휘둥그레 진 것도 바로 그때였다.


“야! 너 미쳤어!?”


우혁의 셔츠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오른팔 위. 저번에 봐준 곳 아니야? 승호는 아연실색을 하며 우혁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서둘러 풀었다. 당황하긴 한 모양인지 답지 않게 헛도는 손길을 내려다보며 우혁이 그 모르게 씩 웃었다.


“너 이렇게 다쳤으면 말을 해야지! 뭐야, 벌어진 거야? 야! 사람이 치료를 해 줬으면 좀 곱게 들고 다닐 것이지, 또 이건 언제…!”

“어쩔 수 없었어. 요즘에 자주 부딪치는 놈들이 있어서.”

“동네 싸움은 너 혼자 다 하냐? 이 개가 진짜!”


저번에 꿰매 준 상처가 터진 것을 보며 승호는 기절할 것 같은 머리를 간신히 붙들고 치료에 들어갔다. 아니, 꿰매주면 뭘 하냐고. 꿰매주면! 일주일을 못 넘기고 이 꼴로 돌아오는데! 이쯤 되면 우혁의 주치의나 다름없어진 승호의 입장에서도 열이 받고도 남을 상황이다. 곱게 좀 못 쓰냐, 엉? 화는 화대로 내면서 알코올 솜을 문지르는 손길은 섬세하기 그지없었다. 뭐라 대꾸하려던 우혁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말았다.


일부러 다쳐오는 적도 있다고. 어떻게 말을 해. 그럼 아주 뒤집어 질 텐데.


“윽…….”

“참아!”


승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우혁의 상처를 들여다봤다. 이제부터 우혁이 해야 할 일은 그런 승호를 들여다보는 것다. 그는 오른 팔을 전부 내 준 채로 승호의 미간이 좁아지는 것을 보다가 또 속으로 픽 웃었다. 심각한 얼굴. 까무잡잡한 피부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분홍색 머리를 보다가 그만 씹어 먹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야 우혁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종종 생각보다 몸이 앞서는 경우가 있는데 유독 눈앞의 남자에 한해 빈도수가 높은 편이었다.


“또 이럴 거야, 안 이럴 거야.”

“……….”

“쓰읍. 대답 안 해? 진짜 혼나?”


어쩌면 단순히 신기한 걸지도. 우혁은 저를 정말 기르는 개처럼 대하는 승호의 취급에 기가 막혔다가도 결국 실소를 터뜨렸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를 이렇게 함부로 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베타라고 해도 어쨌거나 우혁은 알파였다. 그것도 상당히 형질이 강한 축에 속하는. 알파 특유의 설명할 수 없는 기질은 소위 카리스마라고 불리는 아우라로 발현되기 마련인데, 눈앞의 시건방진 의사 선생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것 같으니 그 점이 오직 의문스러울 뿐이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맨날 이렇게 터져서 오는 거야? 너 소속 어디야? 내가 윗대가리들한테 말 좀 해줘? 애 좀 작작 굴리라고?”


그쪽 세계에 발 담그신 분들이라면 내가 좀 알그든? 승호의 말에 우혁은 또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호는 새 붕대를 감으면서도 종알거리는 입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조폭이라고는 해도 말이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정말 말이라도 해 줘? 정 안 되면 휴가라도 달라고 그래. 어째 몸이 성할 날이 없어요. 성할 날이.”

“지금 나 걱정하는 건가?”

“걱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개야. 너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요. 사람 목숨이 9개 달린 것도 아니잖아. 응?”


언제는 개라며. 정말 그렇다 해도 우혁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 같은 말은 스스로 삼갈 줄 아는 소양을 갖춘 개였다. 그는 승호를 빤히 들여다봤다. 내내 시끄러운 그의 입이 언제 멈출 지를 가늠하며. 그러고 나면 저를 봐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러니까……. 헉!”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네, 네가….”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전혀 생각지 못한 사정거리 안에 들어버렸음을 알았을 때. 승호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조폭이라기엔 지나치게 번듯한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아이고, 어머니. 아니 아부지. 승호는 뻣뻣한 고개를 겨우 옆으로 돌리며 의료 도구들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다, 다 했으니까! 그만 가!”

“가라고? 너무 늦었는데.”


늦었다고? 아직 9시밖에 안 됐는데.


“자꾸 까불지! 얼, 얼른 가라고!”


가라는 건지, 아님 말라는 건지. 우혁은 멀쩡한 왼팔을 들어 승호의 뒷목을 잡고 홱, 끌어 당겼다. 역시 힘이라면 댈 것도 아닌 승호가 주춤거리는 동안 우혁의 흰 손가락이 분홍 머리칼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엔 정말 늦은 것이다. 반항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승호의 눈이 질끈 감겼다.


“안승호. 게이였어?”


또 헛소리 한다. 승호는 그제야 한 쪽 눈만 슬쩍 떴다. 여전히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우혁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호는 이상하게도 그 표정에 그리 약했다. 하지만 안 돼.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승호의 손이 우혁의 가슴을 퍽, 밀쳤다.


“그게 대체 왜 궁금한 건데.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어서 집으로 꺼지시지?”

“네가 오메가라면 몰라도, 베타라면 보통 남자에게 반응하거나 하진 않으니까.”


어휴, 집요한 새끼. 승호는 마지막 수단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이 사. 베타든 오메가든!”


또. 또. 도망친다. 자신이 조금만 불리하다싶으면 발부터 빼고 보는 승호의 태도가 짐짓 맘에 들지 않았던 우혁의 미간이 보란 듯 좁아졌다. 동시에 마른 혀를 축였다. 반응을 보니 분명 베타가 맞긴 한 것 같은데…….


사실 어느 쪽이든 우혁에겐 상관없는 문제였다.


동글한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분홍색 머리. 처음부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분홍색 머리 의사라. 그것도 진짜 의사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이런 허름한 진료소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 대체 정체가 뭘까. 좋은 냄새가 나는데. 지극히 본능에 의한 판단은 틀리지 않았을 거라 확신하면서도 한 번쯤 더 망설이게 하는 안승호의 정체는.


“안승호.”

“뭐, 아직 안 갔…!”


알고 싶다. 잘못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은 우혁에겐 없었다. 정확히는 필요 없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얼굴을 순식간에 감싸 쥔 것은 하얀 손가락. 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은 사이로 빠져나가기가 여간 쉽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하나로 충분한 덫이 되어 손바닥 하나로도 능히 가려질 것 같은 작은 얼굴을 손에 쥔다. 입에 비해 행동이 느린 것은 전적으로 승호의 탓이다. 위험하다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너를 노리고 있다고 말하는 남자로부터.


우혁의 입술과 승호의 입술이 닿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동그란 눈이 흠칫 커졌을 때에는 이미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우혁의 혀가 파고든 뒤였다. 절차나 순서 따위는 전부 무시한 무례한 키스는 숨 쉴 새도 주지 않고 그의 혀를 옭아맸다. 눈을 감는 건 당연해. 우혁은 혀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턱 하고 부딪치는 상대의 반동을 배려해 줄 시간은 이쪽에게도 없다. 옭아매고, 가두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모든 퇴로를 막는다. 승호도 눈을 감았을까? 거기까진 알 수 없지만.


맛보고 싶어. 또, 또.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 바로 이 냄새였다. 언제부터 달큰한 냄새를 좋아했더라. 혀 아래서 진득하게 맞물리는 맛이 그 냄새를 닮아있다. 더, 조금만 더. 숨을 쉬지 않아도 좋으니까 잠시만…더. 얼굴을 감싸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제야 우혁은 슬그머니 눈을 뜰 수 있었다. 꽉 감겨 진 승호의 눈 아래로 떨리는 속눈썹을 보고나서야. 젖은 입술이 마지막으로 그를 훔친 뒤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미친 새끼…….”


왼 뺨으로 날아 든 따귀에 그만 정신이 번쩍.


들어버린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우혁은 순간 모든 판단력이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음을 인정해야 했다. 맞았다? 칼도 아니고, 주먹도 아니고, 따귀였다. 원래도 크게 변화가 없는 표정을 지금만큼은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안 그랬다면 아주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나가!”


우혁은 쫓겨나듯 진료소를 빠져나왔다. 문은 부서져라 닫혔다.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고로 우혁의 심기. 불편할 수밖에.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오죽하면 그 조용하던 재원이 먼저 나서 그의 안색을 살피고 있을까. 우혁은 대답 없이 넥타이를 슥슥 고쳐 맸다. 목을 덮을 듯이 올린 칼라는 넥타이가 끝까지 매듭을 짓자 얌전히 제 자리를 찾았다. 맞아서 부었던 뺨은 가라앉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여전했다. 뺨을 맞았다. 내가? 내가. 나가라며 윽박을 지른 승호 덕분에 지금 일주일 째 진료소의 문턱도 밟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우혁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여러 이유들 중 하나였다.


“그만 성질 좀 죽여요. 애들이 지금 보스 눈치 보느라 난립니다.”

“왜 내 눈치를 봐.”


왜냐고? 허. 기가 찬 재원은 우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지금 우성 알파가, 제 형질 하나 마음대로 추스르지 못해 온 몸으로 불쾌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는데 거기 반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나마 재원 정도 되니 옆에서 말이라도 붙일 수 있는 것이지, 다른 놈들은 눈치만 보며 알아서 설설 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예 옆으로 다가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의사 때문이죠?”

“……….”

“안승호?”










Episode 2

센티넬버스 (센티넬가이드)



센티넬버스(sentinelverse) 혹은 센티넬가이드 (sentinel-guide) 라고도 한다. 센티넬과 가이드로 나뉘는데 이 둘은 운명적 공동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둘은 태어날 때부터 한 명의 센티넬과 한 명의 가이드가 정해져 있으며 일종의 파트너 개념이기도.

 

센티넬은 뛰어난 신체 능력·초능력을 가진 대신 그것을 사용하는 '뇌' 가 과열될 경우 스스로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서 죽는다'. 실제로 센티넬들의 주요 사망 원인은 브레인 컨트롤에 실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들이다.  


가이드는 바로 이런 센티넬들이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돕는 존재들로, 그들이 딱히 어떤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두 사람은 애초에 '링크(연결) 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이드와의 접촉 자체가 센티넬들에게는 완화 작용을 하게 되는 셈. 하지만 이런 컨트롤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운명 공동체가 '접촉 행위'를 해야 하는데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포옹, 키스, 섹`스' 등 신체적 접촉 행위이다.

 





OVER THE YEARS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한 달. 정확히 한 달이다. 한 달 동안 우혁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승호는 언짢아진 미간을 팍 찌푸린 채로 지금의 심경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평소의 동글동글한 귀여운 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하지. 나는 지금 기분이 나쁘거든. 그것도 몹시!


맘 같아서는 눈앞의 서류를 더미 채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중에는 영국과의 중요 계약 서류도 있었고, 개발 공장의 구역 확장을 위한 토지 서류도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다만 쥐고 있던 주먹을 부르르 떠는 것밖에는. 그것만이 승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말도 안 돼!”


뭐가 말입니까. 옆에서 애프터눈 티를 준비하던 재원이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평소라면 자신과는 정 반대인 그의 차분함을 높은 장점으로 샀겠지만 지금만큼은 공감 능력이 제로라며 맹비난을 퍼붓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너는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한 달이나 못 봤다구! 한 달이나!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광광 두드리고 싶은 것을 꾹 참는 보스의 심정에는 1mg의 관심도 없을 재원이 조용히 그의 옆에 티 세트를 내려놓았다. 승호가 제일 좋아하는 마빈 베이커리의 에끌레어와 함께.


“우혁님 때문이라면 적당히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 적당히? 내가 지금 적당히 하게 생겼어!?”

“우혁님이 일부러 얼굴을 비추지 않으시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능력이 좋은 남자는 이래서 문제죠. 달래는 재원의 말도 지금만큼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승호는 씩씩거리면서도 에끌레어를 들어 한 움큼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퐁당 아이싱이 듬뿍 뿌려진 페이스트리 슈도, 씹을수록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크림도. 지금은 크게 소용이 없을 듯 했다.


“무슨, 센터에 요원이 장우혁 하나밖에 없어? 왜 맨날 사방팔방 장우혁 못 불러서 안달이래? 휴가 달라고 해, 휴가!”

“휴가는 저번에 보스와 쓰지 않았습니까. 두 분이 같이 이탈리아에 다녀오셨죠.”

“가면 뭐해, 가면! 온통 장우혁 알아보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사인 해 주다가 시간 다 보냈는데!”


그럼 뭐 가자는 건가 말자는 건가. 재원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가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찻잔에 남은 티를 마저 따랐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것도 짜증나는 일이야. 우혁은 S클래스의 센티넬 요원인것으로도 모자라서 승호의 제약 회사 광고 모델을 겸임하고 있었다. 제약 회사는 여러 약들을 두루 다루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손꼽히는 것은 ‘센티넬들의 뇌를 진정시키기 위한 억제제’였다.


보통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각성하는 센티넬들은 죽을 때까지 가진 뇌의 10% 미만의 면적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인간들과 달리 뇌의 50%까지 사용할 수 있는 괴물들이었다. 그들은 뇌가 비상하게 발달한 브레이너(Brainer)와 체급 및 신체 능력 발달계인 프리터(Preterhuman)로 분류되곤 했다. 어느 쪽이든 인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딱 한 가지 결점이 있다면 센티넬에게는 가이드. 가이드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상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대신 그들의 뇌는 애석히도 오랜 활동을 견디지 못했다. 가이드는 센티넬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치유책’으로서 손을 잡거나 키스, 혹은 섹스를 통한 신체 접촉을 통해 뇌의 과다 사용으로 폭주하는 센티넬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만일 가이드가 없으면 센티넬들은 20대의 절반을 채 살지 못하고 뇌의 폭주, 즉 뇌출혈로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센티넬로서 각성함과 동시에 전 세계에 지부를 갖고 있는 S.A.P.D(Special Ability Police Department). 통칭 ‘센터’에 등록하여 소속되는 것이 의무였다. 강제성을 띈 집단 소속에 반발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확률적으로만 보아도 개인이 전 세계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가이드를 만나게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센티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센터에 자진 등록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대로 가이드들을 찾아내기란 이 역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가이드가 없으면 죽음에 이르는 센티넬과 달리 가이드는 센티넬이 있건 말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가이드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평생 센터에 소속되어 그들의 ‘매칭 프로그램’에 따라 누군가의 가이드가 되어 평생 수혈 팩같은 신세를 면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만큼 돈이나 대우 면에서는 확실히 우대를 받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삶에 제약이 생기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사실이었으므로 가이드들은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불평하셔도 소용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겁니다.”

“네가 말 안 해줘도 이미 알고 있거든!?”


승호는 제 팔자의 기구함을, 이전에 우혁의 뛰어난 능력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센티넬이고, 자신은 그의 가이드였다. 그런데 세상에 어느 센티넬과 가이드가 이렇게 만나기 어렵냐 이 말이야. 이 또한 장우혁이 너무 잘난 탓이다. 같은 센티넬이라고 해도 뇌의 사용 면적량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지는데, 우혁은 승호를 만나기 전부터 A클래스 요원이었다. 승호를 만나고 난 이후로는 기다렸다는 듯 S클래스로 승급되었으니 그는 날 때부터 선택받은 인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아. 진짜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죽을 거야.”


만나게 된 경위도 황당하지. 승호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은 채로 ‘언젠가’의 과거를 떠올렸다. 벌써 7년 전이다. 그때에는 승호의 회사가 이제 막 빛을 보려 할 때였다. 센티넬 관련 된 약물을 개발하는 회사에게는 세계 정부에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재정적 지원을 해 준다는 말에 혹한 승호는 무려 1:400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심사에 통과했다.


승호 역시 약제사이자 사업가로서 예전부터 그쪽 계열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부분이 높은 점수를 얻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어쨌든. 승호는 성공했고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하루에 두, 세 시간씩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인터뷰니, 행사니 하는 곳에 끌려 다녔다.


순전히 쇼맨십에 의한 결정이었다. 언론을 비롯한 전 세계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뭔가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센터에서는 기왕 이렇게 된 거, 그에게도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혹시 센티넬일지도 모른다는 농담에 함께 있던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것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다들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 사실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어? 어…! 이거 수치가 이상한데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검은 모니터 위로 선명한 이름이 떠올랐다.


[Test resert : GUIDE 99.8%]


놀랍게도 승호는 가이드였다! 모니터에 떠오른 이름과 퍼센테이지를 바라보던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대로 멈춰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며 온갖 숫자들이 빠르게 올라갔다. 새로운 가이드가 등록됨과 동시에 센터의 슈퍼 컴퓨터에서는 그와 매칭 될 새로운 파트너를 고르고 있었다. 매칭 퍼센테이지는 최소 50%가 넘어야 파트너 선정이 가능하다. 그 밑으로는 매칭이 가능하다 해도 능력 발휘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제발 없어라.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랬다. 적당히 쇼맨십을 보여주고 말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 누가 알았는가. 가이드 등록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여기서 자신의 파트너가 될 센티넬까지 만나버린다면…….

그러나 신은 그의 절박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matching percentage : 97.96%]


지져쓰으 크라이스트! 말도 안 돼! 승호는 제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사실에 숨까지 멈췄다. 모니터의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matching result : SENTINEL. WOO HYUK. J]


앞선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사실이었는데, 그 뒤에 이어져 나온 결과에 다들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장우혁이라고? ‘그’ 장우혁? 승호는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이름들이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렸다. 장우혁? 장우혁이 누군데. 승호는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저 어마어마한 퍼센테이지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진정한 승호가 우혁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3시간 뒤였다. 승호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혹시 제가 만나야 하는 센티넬이 범죄자인가요? 누구라도 붙잡고 싶을 정도로 가는 길이 험난했기 때문이다. 지하 3층. 어두운 복도에서 철창을 두 개나 지나 깊숙이 들어간 내부는 방공호를 연상케 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상태라서 구금 중입니다.’

‘……폭주요?’


센티넬이 가이드를 만나지 못한 채로 오랜 시간 방치 되면 폭주할 수 있다는 사실 쯤은 승호 역시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폭주 직전의 센티넬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거…위험한 건 아니죠?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이는 주변의 풍경만으로도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론 충분했다.


‘감금복을 입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별로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승호는 다시 침을 삼켰다. 긴장으로 온 몸에 쭈뼛 선 털이 그에게 달갑지 않을 미래를 암시했다. 후우. 후. 심호흡을 크게 들이킨 승호의 눈앞에서 두꺼운 철제문이 열렸다. 그때, 승호는 우혁을 처음 만났다.

금방이라도 씹어 삼킬 것 같은 짐승의 눈과 마주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얼어붙은 몸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창백한 얼굴. 길게 자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이 달려들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뭐랄까. 그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승호는 평생 그 눈빛을 잊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왜 일까.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정말이지 기이한 현상이었다. 자신에게 이를 드러낸 개를 만지고 싶어 하는 인간은 없지 않은가?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 순간의 우혁이, 몹시 상처 입은 짐승처럼 느껴져서일 것이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가이드로 확정 된 자신의 운명을 향해 퍼부었던 저주는 어디로 갔는지, 승호는 비정상적인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저 짐승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승호는 망설이지 않고 그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가 자신을 물거나 다치게 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그건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만지면 되나요? 끌어안을까요? 자신의 정체성을 3시간 전에나 알게 된 초보 가이드는 문득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뭐든 상관없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상대를 끌어 안았다. 접촉만 하면 된다며. 만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분대로라면 쓰다듬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하면 되지. 승호는 난생 처음 보는 사내를 꽉 끌어안은 채 가만히 토닥거렸다.

그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 몇 번이고, 계속.


결과는 놀라웠다. 30분도 되지 않아 폭주 전 상태에서 줄곧 멈춰있던 센티넬의 뇌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모든 수치들이 내려갔음은 물론, 프리터(Preterhuman)계인 그의 근육 팽창률과 조직 체계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는 역시 큰 이슈거리가 되었다. 죽음 직전의 센티넬, 가이드를 만나 제 2의 인생을 맞이하다! 상대는 놀랍게도 센티넬 제약 회사의 대표! 운명적인 세기의 만남! ……모든 뉴스와 신문들, 인터넷까지. 언론은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었다. 덕분에 주가가 치솟은 점에 대해서는 ‘땡큐’할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우혁이 (그토록 하기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 회사의 광고 모델까지 떠안게 된 것은 ‘노땡큐’인.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랬던 적도 있었지. 물론.”


습관이 된 혼잣말이 주절주절 흘러나왔다. 티를 두 잔이나 마시고 추가한 에끌레어를 4개나 더 먹고 나서야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승호는 만족할 수 있었다. 센티넬이 아닌 그의 뇌는 평범한 인간의 것이었고, 그렇기에 평범하게 당분에 취약했다. 당(糖)은 좋은 영양소야. 그렇고말고. 사람의 기분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거든.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센티넬이자, 사업상 파트너이자, 연인을 한 달이나 못 본 상태였고 이 무뚝뚝함의 화신 같은 남자는 자신에게 연락 한 통도 없었다.


“하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재원아.”

“먼저 연락해 보세요.”

“내가? 왜? 싫은데?”


아쉬운 쪽이 손을 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거늘, 꼭 이런 면에서만큼은 애처럼 군다는 것이 자신의 보스이자, 이제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센티넬 관련 제약 회사 ‘SL pharmaceutical. CO’의 대표인 승호의 결정적 문제점이었다. 사업처럼 연애도 공격적으로 하시면 어디가 덧납니까? 괜히 덧붙였다가 덧날 것이 분명한 말을 이번에도 목구멍 뒤로 꾹 삼킨 재원은 한숨도 함께 넘기며 말을 이었다.


“파티를 열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파티? 무슨 얼어 죽을 놈의 파티. 내가 지금 웃고 떠들 기분처럼 보여?”

“제 말은, 자사에서 센터에 엄청난 금액을 후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 우혁님이 다녀오신 이라크 파병 건도 보통 사안은 아니었고요. 무사히 임무 완수하고 돌아왔으니 위로하는 차원에서라도 파티를 열어주시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죠.”

“뭐가 예쁘다고 파티까지 열어 줘?”


덕분에 나는 애인 얼굴을 코빼기도 못 본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뻔히 보이는 얼굴을 마주 보던 재원이 결국 소리 내어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는 똑똑한 남자가 왜 우혁과 관련 된 일에서만큼은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할까. 이 또한 매번 생각하게 되는 미스터리였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공식적인 일정’을 만들어 보시라는 거죠.”

“……응?”

“그런 자리라면 우혁님이 필히 참석하셔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아. 그제야 승호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떴다. 나의 비서 가라사대. 자존심을 굽히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서 그럴싸한 스케줄을 만들어라!


“너…… .천잰가 봐. 재원아.”

“알고 있습니다.”


재원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혁과 승호가 이 바람 잘 날 없는 연애를 7년 동안이나 해 오는 동안 그 모든 과정을 바로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 봐 온 것 또한 그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재원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로 할 일을 찾아 낸 승호는 신이 나서 벌써부터 파티 준비를 위해 인터넷 창을 켰다. 제일 좋은 걸로 해야지. 케이터링 어디 부를까. 어? 금세 들떠 재원을 붙잡고 이것, 저것 묻기 시작한 승호를 보면서 (결과적으로 재원의 말을 듣는가 하면은 그것도 아니었다.) 재원은 드물게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일단 일부터 하시죠. 대표님.”







예약은 8월 8일 자정까지 받으며 이후 종료됩니다. 본 서적은 추후 웹상 유료 공개 등의 계획이 일절 없으며, 소장본 외에는 전체 내용을 확인하실 수 없습니다. 


소장본 내에는 '엔터' 등의 띄어쓰기가 모두 줄여져 있으며 2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최종 탈고 및 편집이 끝난 최종 소장본 형태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은 위의 샘플을 확인해 주세요.)


책 수령은, 

8월 14일 '디페스타' 행사 B23 부스로 오시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수령 시에 성인 확인을 거칩니다.) 배송 수령을 통해 자택에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배송 수령 시 부득이하게 성인 인증 과정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선입금 예약제이며, 현장 판매분은 소량 발매할 예정이오니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필히 기간 내에 예약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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