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자 #아성명대 








아성의 50가지 그림자 AFTER

해피엔딩을 위하여


WRITTEN BY SEOBANG







02.








무슨 말을 했어야 했을까.


그의 고민이 과거형이라는 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모든 후회 또한 이미 과거가 되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명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유를 들자면 첫째. 아성은 말도 안 되게 당당했다. 명대는 그 순간 ‘선’이란 말에 제가 아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정도였다. 둘째. 이 이유는 첫 번째로 언급한 그의 뻔뻔함과도 연관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자신이 그의 이유, 내지는 언변에 휘말려 결국 K.O 패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싸움이라면 명대 역시 어디 가서 빠지진 않았지만 상대가 아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하여 셋째. 명대는 이 사안을 결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으며, 좀 더 심도 있는 주제로 다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어영부영 말 몇 마디로 물고 늘어지는 일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스트릿 파이터가 아니었다. 싸우더라도 링 위에서 싸울 것이다.



왜? 나는 아성의 ‘연인’이니까.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실이었다. 혼자만의 망상이었느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다. 망상으로 3년 만날 정도면 그가 아니라 제 정신 상태를 의심해 봐야 할 것. 그들은 분명 연인이었고, 이는 서로 합의 된 사실이며. 그에 따른 권리와 책임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친구와 연인을 구분하는, 정확히 말하자면 연인의 관계가 특별해지는 까닭은 스킨십의 유무를 이유로 들 수 있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랑 키스하고 섹스하는 게 달리 문제랄 것도 없으니 차치하고서라도. 진정한 의미의 연인이란 서로를 구속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명대가 아는 선에서는 분명 그렇다.


이 구속이란 것도 ‘내 연애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인데, 쉽게 말해 ‘바람피우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명시할 수 있겠다. 아성이 밖에서 무슨 사업을 하고, 시간을 보내고, 어느 바에서, 무슨 칵테일을 마시든지. 그건 아성의 자유였지만 그가 그 시간을 다른 이성(혹은 동성)과, 특별한 목적으로 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컨대, 명대는 아성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이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렇게 풀어서 설명을 해야 할 정도로? 명대는 또 다시 혼란에 빠졌다. 혼란은 어젯밤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어지고 있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니.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제출 기간이 코앞인 논문조차도 명대의 생각을 멈출 순 없었다.


“명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명대!”


톡 쏘는 부름에 그제야 명대의 고개가 그리로 향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만려였다. 학교 안에서 그녀를 마주치는 일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은 2시에 카페테리아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한 뒤였으니 마주치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하다. 명대는 얼빠진 표정으로 만려를 바라봤고, 그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음을 감지한 만려는 두말 않고 의자를 끌어다가 그의 옆에 앉았다. 안 그래도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 그래! 너 무슨 일 있지. 뭐야?”


만려는 무슨 일 있어? 라고 묻지 않는다. 그녀의 질문은 대개 이미 확신을 바탕으로 쏟아지기 마련이다. 알지만, 명대는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얘 좀 봐, 얘 좀 봐. 너 설마…….”


호들갑을 떨던 만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신은 분명 어제 명대에게 미션을 내린 바 있다. 여자의 감이랄지. 그 일과 관련되어 있을 거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만려가 안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좀 더 바짝 다가가 명대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어쩐지 그의 대답이 자신의 마음에 썩 차지 않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남친이랑 무슨 일 생긴 거잖아. 설마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지? 표정이 왜…….”

“만려.”


명대는 지금도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헤어질까?”


연애 3년 만에, 명대는 처음으로 이별을 입에 올렸다.









확실히 이별은 타인에게 충격을 선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대처였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대처였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었다. 명대는 진심이었다. 비단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그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일단 아성과 자신은 태생이 달랐다. 재벌 가문에서 태어난 남자와 평범한 사람으로 자란 자신. 어떤 기적에 가까운 우연으로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언정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익숙한 결말은 동시에 식상했다. 모든 동화들이 그 뒤의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는다. 신데렐라는 행복했나? 백설공주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자신을 ‘공주’라는 위치에 두는 현실조차 짜증이 나는 명대에게는 어려운 주제였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명대는 멍청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상황과 현실에 처해있는지는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재벌과 사랑에 빠진 평민. 게다가 남자와 남자. 그럼에도 3년의 빈틈없는 연애. 연애가 단순히 연애로 끝나지 않을 연장선에는 더는 성별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여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저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건 분명해. 하지만 다음은? 결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변화가 오는 것도 아니며. 그럼에도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에는.


우리가 과연 60살 노인이 되어도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까?


게다가, 아주 당당하게 ‘선을 보고 왔다’고 말하는 남자와 말이지.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명대는 오랜만에 스스로 담배를 사 입에 물었다. 아성이 살고 있는 그의 오피스텔 테라스에 서서 담배 끝에 불을 붙일까, 말까를 고민했다. 속상해. 생각이 너무 많아. 이걸 투정부릴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투정의 이유라는 어쩔 수 없는 사실.

이 사실이 명대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뭐 합니까?”


그러니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건 반칙이라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괜스레 찔리는 건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지만.


“현관에 신발은 있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계속 찾았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하는 다정한 말들 역시. 반칙이라고.


“대표님.”


물고 있던 담배에 대해 해명할 필요는 없었다. 명대는 담배를 빼 손가락에 쥐고는 아성을 바라봤다. 도시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펜트하우스의 테라스에서 보는 그의 얼굴이 쓸데없이 잘생겨 보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할 길이 없다. 반대로, 그런 잘생긴 얼굴에 대해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해야만 한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부정할 길은 없다.


“결혼할 거예요?”


모르겠다. 다른 질문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내 묻고 싶었던 질문은 그뿐이었다. 결혼할 거예요?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그거, 꼭. 해야만 해요? 입술이 깨물리는 건 정해진 순서였다. 명대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성이 지나치게 뻔뻔한 이유도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갑자기 나에게 선을 본다고 한 건 당신이야.


아성은 모른다. ‘선을 본다.’는 말에 어떤 다른 의미가 있을지, 혹시 자신이 모르는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얼마나 고민했는지. 애처럼 보이기 싫어서. 현실에 장애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가장 너른 인내심을 발휘해 겨우 할 수 있는 말이었다는 걸.


아성은 모른다. 그 사실이 문득 서러웠다.


“아뇨. 됐어요. 잊어버려요.”


왜 이런 생각을 나만 해야 해?


“대표님이 어떻게 하든 그건 대표님 마음이겠죠.”


명대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성인이었다. 담배를 사는 건 물론 피우는 데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사람이다. 즐겨 피웠던 것도 아니지만 속이 상하거나 고민이 많을 땐 한두 대씩 피웠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담배 좀 피운다고 해서 문제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성이 보건 말건 그건 명대에게 조금도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이런 생각까지 알았던 걸까. 명대의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아성의 지포 라이터였다. 담배 하나를 피울까 말까. 고민했던 자신의 망설임이 우스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불을 붙여주는 아성의 태도에 명대는 오히려 기가 막혔다. 그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어쩌면 온통 휘둘리고 있을 뿐인 건지도 모를 자신, 명대에 대해서.


“담배 피우는 거 괜찮은가 봐요?”

“피우고 싶으면 피워요.”

“상관없다는 뜻인가?”

“당신 마음이지.”


왜 놀라지도 않아. 명대는 이마저도 불만이었다. 왜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정작 잔소리를 하면 제일 짜증을 낼 건 스스로였지만 어쨌든.


“왜요. 어차피 나는 임신 안 하니까?”


생각했던 말은 물론 아니지만 하고 싶지도 않았던 말이 무작위로 튀어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말이다. 내뱉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이래서야 내가 여자가 아닌 게 문제냐고 되묻는 꼴밖에 되지 않지 않은가. 명대는 그만 죽고 싶어졌다.


“무슨 상관입니까?”

“…됐어요.”


대화를 할수록 초라해질 자신을 알았다. 명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고 싶다. 유치해지고 싶지는 않다. 자존심 때문이든 뭐든.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담배를 한 모금 더 깊이 들이켰다.


“임신하고 싶습니까?”

“꺼져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명대는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인정했다. 나는 여자가 아니다.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여자가 될 수 없을 것도 안다. 법적인 허락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결국 당신의 곁에서 이대로 일 년, 이 년 늙어갈 거라는 것도 안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야.


“정말 꺼졌으면 좋겠어요?”


아성이 뒤를 감싸 안았다. 테라스의 난간에 기대고 있는 명대의 몸을 모조리 사로잡은 뒤, 어깨 너머로 스리슬쩍 들어와 명대의 귓가, 바로 곁에서 속삭였다. 반칙이다. 그의 목소리에, 이런 제스춰에. 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반칙일 수밖에 없잖아.


명대는 아성의 모든 제스춰에 응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경질적인 표정과 행동. 모든 것이 그럴 것이라고 예고했다. 명대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려고 했다. 아직 반 밖에 타지 않은 담배를.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반이나 타버린 연애를.


“꺼지라고 하면 꺼질 겁니까?”

“아니.”


어쩌면 반이나 남았을 지도 모르는 연애를. 꼭 여기서 붙잡힌다.


아성의 고개가 좀 더 앞으로 기울었다. 입술과 가까워진 거리에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마뜩치는 않았지만 명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직 남은 담배를 아성의 입으로 대 주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고 빨아들였다. 그리고 명대에게 닿지 않을 밖으로 연기를 흘려보낸다. 억울한 점은, 그러는 동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아무 제스춰도 취할 수 없고. 그저 아성을 지켜보는 수밖엔 없다는 것이다.


짜증난다. 이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는 그 따위의 여유로움이.


“아저씨 진짜 짜증나.”

“대표님이라는 말보다는 낫네요.”

“이런 점이 특히 짜증난다고요.”


다 알면서 왜. 내가 뭘 싫어하는지. 내가 뭘 짜증내 하는지. 내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알면서 왜 그래?”

“뭐가 말입니까.”

“선 보고 왔다면서요.”


이렇게 꺼내고 싶진 않았다는 것조차도. 당신은 알 것 같은데. 명대의 눈썹 사이가 좁아졌다. 결국에는 이실직고할 자신을 안다. 알면서도 인정은 하고 싶지 않다. 참을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자신이 싫다. 그래서 바란다.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기 전에 당신이 알아서 좀.


“네, 선보고 왔죠.”


혼자만 산뜻하지 말고 좀.


“놔.”


짜증나. 당신.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싫은데.”

“농담하는 거 아니거든?”

“나도 아니야.”


이런다고 넘어갈까. 명대의 시선이 비죽 위로 향했다. 아성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었다. 언제는 바라만 봐도 좋던 얼굴이 문득 울화에 휩싸이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 된다. 차라리 화를 내던가. 짜증을 내던가. 늘 그런 건 자신의 몫이고 아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3년의 연애 내내, 명대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바로 그 점이었다.


여전히 명대는 그의 품 안에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팔 안에. 벗어나기 힘든 영역 안에서, 명대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그의 품 안에서 타당한 명분을 들어 빠져나갈 수 있을지. 말싸움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 있었지만 아성만은 예외였다.


“농담 아니라고 했어요. 나와요.”

“원한다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잖아.”


걷어차든. 뺨을 치든. 문제는 그 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명대가 아니라 아성이라는 점이었다.


“아-하. 맞고 싶단 말이죠? 누구와 달리 난 때리는 취미는 없는데.”

“나도 너 아니면 없어.”


…젠장할. 명대의 미간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좁아졌다. 이 남자는 왜 항상 이 모양이지? 결국 그에 휘둘리는 것도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남자의 고민 역시 한결 같았다. 아성은 늘 그대로였다. 그 점이 좋았지만, 가끔은 싫기도 하다.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 결혼이라는 주제를 등극시키는 것도 우습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욱. 어느 한쪽의 결혼으로 불안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성은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명대는 현혹될 뻔한 고개를 흔들었다.


“나 아닌 사람과 저녁, 아니 저녁이든 뭐든. 그런 밥을 먹으면서 결혼 얘기를 나눌 생각이 들어요? 난 모르겠어. 심지어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했죠. 선을 본다고요?”

“너한테 얘기한다고 해서 달라질 거 아니니까.”

“……지금 그 발언 후회 안 하겠어?”

“사실이잖아. 사실대로 말할 뿐이야.”


아성은 여전히 팔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반경 안에는 아직 명대가 있었다. 가장 문제는 그 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명대라는 사실이다.


“너에게 모든 걸 말할 생각은 없어. 네가 알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너에게 말할 때에는, 네가 그 사실을 알아도 된다는 뜻이야.”

“선 보는 게 말이죠.”

“삐딱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건 일종의 비즈니스야.”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기엔 명대는 이미 아성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를 맡은 뒤였다. 명대는 말을 삼켰다. 적잖이 속이 쓰렸다.


“대답해도 돼?”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인데. 그 말 중에 뭐가 이성적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있는 명대의 고민을 멈춘 건 모순적이게도 아성의 질문이었다. 명대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바라봤다. 그와의 거리는 여전히 가까웠다. 명대는 문득 억울했다. 뺨이든, 정강이든. 때리지 못하고 까지 못하는 자신이. 이 거리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스스로가.


“……뭐를요.”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봤잖아.”


핵심을 알아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언제나 거리낌 없이 핵심과 가장 가까운 그가.


“됐어요. 대답하지 마요.”


그것마저도 비즈니스라서.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네가 이해해 달라고 하면 명대는 거절할 수 없을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편안하게 소화할 수 없을 자신을 모르지 않았다. 내내 속이 아플 것이다. 아성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 개인 헬리콥터를 소유하고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5성급 이상의 호텔을 자유로이 예약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3년 넘도록 내내 누려왔다. 명대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연대 책임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문제였던 적은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아성이 누군가 결혼한다고 말한다면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도 없었다. 그럴 바에는 지금 외면하는 게 나았다.


“그럼 키스는?”


빌어먹을 자식. 모르지도 않으면서.


“……그런 기분 아녜요.”

“그런 기분이었으면 좋겠는데.”

“…아저씨. 나는요.”

“키스하고 싶어. 명대. 지금.”


당장. 그의 요구는 분명했고 언제나 그렇듯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명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패배가 분명한 게임이라는 것을. 더욱 열 받는 점은 상대는 이기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을 거라는 사실을. 왜 아직도 나는 이기고 지는 걸 생각해야 해? 불안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불안한 적 없었는데, 빌어먹을 선이라는 소리로 온통 흔들어 놓고. 뻔뻔하게 지금 키스를 하고 싶다느니 하는 소리나 지껄이는 당신에게.


화를 내야 하는데.


입술이 부딪치는 순간은 단순히 접촉 사고라고 말하기엔 진득한 울림이 있었다. 명대는 몸을 뒤로 뺐지만 여전히 아성의 반경 안에 있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 쓸데없이 반짝거리는 상하이의 야경을 등진 채로 명대는 아성을 받아들였다. 입이 벌어졌다.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로 위로가 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의 키스를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마저도 알고 있으면서. 능수능란한 혀가 입 안을 휘저었다. 가장 짜증나는 사실은 아성의 키스가 기분 좋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미 명대의 약점을 모조리 알고 있었다. 가만히 뒤통수를 끌어당기는 큼지막한 손이 낯설지 않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미리 거리를 제한하는 손길에서는 익숙한 소유욕, 내지는 독점욕이 가득 묻어났다. 명대가 정말 도망칠 수 없는 건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아성은 그를 놓치지 않는다. 명대를, 놓치지 않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하의 연인이 도망갈 수 있는 사정거리마저 미리 차단하는 그의 소유욕은 피할 길이 없었다.


기분 좋아. 머리가 울린다. 명대는 혀를 움직였다. 그와의 키스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피할 수 없는 키스라니. 이거야말로 반칙이었다. 아성은 비겁했다. 비난할 여지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손이 자신을 맞잡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깍지를 낀 손이 얽히는 걸 알면서도 빼낼 수 없다. 온전히 들어와 모든 걸 사로잡겠다는 그의 과욕을 거절할 도리가 없다. 명대는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소리가 아주 가끔씩 벌어지는 입술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긴 손가락이 자신의 손을 모조리 쓰다듬었다. 움켜쥐어 제 것으로 삼았다. 아성이 욕심이 많다는 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명대였다. 그는 가진 모든 것으로 명대를 조인다. 모든 거리를 차단하고, 다른 곳은 볼 수도 없게 만든다. 진득한 소유욕에 숨이 막힐 것 같으면서도 그의 독점이 아니면 마땅히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명대는 자라지 않았다. 비즈니스든 뭐든. 그에게 다른 상대가 생긴다면 그 점까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는 성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였다. 누구라도 ‘빡칠 만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이 생긴다니. 아성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걸 내가 왜 이해해줘야 해?


“흐…음…….”


짜증나는 건 그럼에도 떠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자신이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아성을 뒤로 하고 갈 자신이고. 그러고 나서도 제가 더 아파서 울 것 같은 미래였다. 헤어지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헤어지고 나서가 더욱 걱정됐다. 그래서 늘 지고야 마는 것이다.


명대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어리다고 말해도. 어리석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어.


서로의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얽혔다. 하나로 엉켜 결국 한 지점에서 꽃을 피워내는 나무처럼. 아성은 자연스러웠다 명대는 그 순간까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아성의 목에 팔을 두를 것인지 말 것인지. 그냥 넘어갈 건지, 아니면…….


아성은 그런 명대를 모를 만큼 어리지 않았다. 사실 어리다고 변명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명대의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러니 아성은 명대의 손가락을 쓰다듬었다. 얽히는 혀에 머리가 녹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늘 지금이 마지막 키스인 것처럼 최선을 다 하면서도. 그의 손을 잡고, 그의 손가락을 쓸어 올렸다. 명대는 완전히 그의 반경 안에 있었다.



확신한다. 그러니까 말할 수 있다.



“하고 싶어.”



망설이지 않는다. 그럴 필요 없다.



“너와, 결혼하고 싶어.”



아성은 그가 도망치지 못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대를 앞에 둔 명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득한 키스의 결말은 손가락에 끼워 진 반지였다. 정신을 쏙 빼놓는 키스 사이에 은근슬쩍 끼운 반지라니. 굳어있던 명대는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결혼해 준 대요?”

“오늘 마무리 지었습니다. 전부 다.”


명대의 질문 따윈 아랑곳 않은 아성이 그의 손을 들었다. 시선만은 여전히 명대를 향해 있었지만 그의 입술은 들어 올린 손, 하필이면 반지를 낀 손가락에 닿아있었다. 명대는 그만 웃어버렸다. 할 말은 산더미 같은데 해야 할 말은 한정적이었다. 체감 온도를 이기지 못한 열이 머리까지 올라 지끈거렸다. 이 아저씨를 어쩌면 좋지?


“그보다도, 나 아직 24살인데요.”

“네가 34살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때 되면 아저씨는 46살인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도 사랑할 사람이 너라는 뜻이야.”


…미친. 누가 이 아저씨한테 이런 말 가르쳤어.


사실 대답이 정해진 프러포즈였다. 이마저도 명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거절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잖아?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연인이었다. 헤어질 일도,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대답은 조금 미뤄도 괜찮죠?”


그러니까 이쯤은 당신도 이해를 해야지. 어른이잖아?


명대는 대답 대신 아성의 목에 팔을 둘렀다. 어느 샌가 손에서 사라지고 없는 담배의 행방은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반이나 태웠는지, 반이나 남았는지. 역시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하고 싶어요.”


알고 싶은 건 36살의 당신. 명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당신과, 지금, 당장.”










/@SEOBANG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이 글은 아성명대의 결혼을 위해 쓰여졌고 쓰일 겁니다.

(빨리결혼식도하고신혼여행으로괌에가서해변방갈로통째로빌려서이런저런것도해야되는데왜아직도여기에있지얘네들은...)


결혼식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_^....


성실 연재가 어려울 거란 말은 미리 드렸었지만 연재 주기가 이렇게 극악해 질 줄은 저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셨겠죠.

하지만 여러분. 아성명대를 믿으셔야 합니다. 다음 편에 ... ... .... 그럴 거니까.


호우주의보에서 무료 중철본으로 배포할까 했던 글이 점점 늘어나는 게 중철본으로 못 만들 분량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혼자만 안은 채...인사 드립니다.


쓰면서 제가 얼마나 좋았는진 저와 아성명대만 알 것...

술 먹고 쓰는 글 아닙니다...아녜요 사실 맞아요...원고하다가 갑자기 아성명대 보고 싶어서...


이제 자야겠습니다...

결혼해라 아성명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덕분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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