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자 #아성명대 








아성의 50가지 그림자 AFTER

해피엔딩을 위하여


WRITTEN BY SEOBANG







04.







“이게 누구야!”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명대가 아성을 부르려 할 때였다. 그들 외에도 누군가 이곳에 있을 거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명대의 정신을 번쩍 일깨우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가 그리로 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화려한 남자가 그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곤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목소리와 달리 낯익은 얼굴에 명대의 미간이 좁아졌다.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명대는 하얀 드레스 셔츠들이 즐비한 행거 위로 조각되어 있는 샵의 이름을 바로 볼 수 있었다.


‘Design 铆 Mao’ 명대도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베이징 대학 경영학과 이수 중 무슨 생각인지 돌연 패션 디자인 계통으로 옮긴 사내. 전혀 접점 없는 전공인데다가 이전까진 패션 디자인과는 초면이나 다름없었던 사내가 졸업 후 5년도 채 되지 않아 세계 패션 무대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잊어버리기 힘들었다.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이기도 했다. ‘Price is Quality’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그의 경영 전략은 어디까지나 상류층의, 상류층에 의한, 상류층을 위한 최고급 브랜드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한 자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마오 본인이 중국 재벌 순위 20위 안에 드는 부친의 영향력도 무시 못 할 것이다.

외에도 보통 인구들을 위한 저가 브랜드를 운영 중이지만 아마 대부분은 마오의 브랜드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고서도 시장 점유율 16%에 달하는 매출액을 이끌어 낸 뛰어난 경영자이자 천재 디자이너.


“오랜만이야. 마오.”


그래, 마오 선생님 되시겠다.


명대는 탐탁찮은, 엄밀히 말하자면 의심이 가득 깃든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마오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되더라. 저가 브랜드 외 ‘Quality shop (퀄리티 샵)’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이곳이 만약 그의 개인 샵이라면 여기 걸려있는 옷들의 가격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명대는 여전히 두 사람을 노려보듯 지켜보고 있었다.


“아성!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남자는 아성을 향해 팔을 더욱 활짝 벌리며 그를 포옹하려 했지만 아성은 한 쪽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나머지 한 손을 내미는 것으로 미리 방어했다.


“오랜만에 보는데 포옹 한 번 할 수 있는 거 아냐?”


아성은 대답 대신 명대가 있는 방향으로 턱짓을 했다. 그제야 남자는 명대를 발견했다는 듯 짝 소리가 나도록 양 손을 부딪쳤다.


“oh, my, god! 피앙세가 함께 왔단 말이지?”


과도한 동작이 곁들여진 부담스러운 반응에 명대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확실히 보통의 사람은 아니었다. 차림부터 이미 평범하진 않았지만. 큐빅이 잔뜩 박힌 블랙 시스루 셔츠라니.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아성이 이런 사람과 알고 있다는 건 사뭇 놀라운 사실이다.


“안녕? 저 악마에게 인생을 저당 잡혔다는 예쁜이가 너구나?”


이런 말투의 소유자라면 더더욱. 명대는 핏기가 가신 표정으로 결코 작지 않은 키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크다는 생각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하고 있었지만 막상 앞에 두니 상당히 위협적이다. 명대 역시 결코 작은 키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남자의 키는 대략 잡아도 190cm가 넘었다.


그러고 보니 패션계의 다윗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지. 명대는 속으로 곱씹으며 남자를 다시 올려다봤다. 그가 남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과거에 마오의 인터뷰를 위해 자료 조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보기 좋게 차였지만. 그런 인사를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명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성을 슬쩍 바라봤다.


“저당 잡힐 뻔 했지. 지금은 아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아성은 무뚝뚝한 답변과 동시에 그들을 지나쳐 셔츠가 걸린 행거 앞에 서서 옷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진짜 저 성격 하고는! 친구를 소개시켜 주려면 제대로 시켜주던가! 명대는 뒤늦게 아성이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사실을 떠올렸고, 이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간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아성의 친구를 만나는 자리가 처음이기도 했고 그렇다는 건 일단 명대보다 최소한 10살은 많다는 소리였다.


묘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남자는 두 사람 사이를 흘끗거리며 씩 웃었다. 아마도 디오르 사(社)의 제품으로 유추되는 컬러 틴트가 그의 입술 표면을 반지르르하게 덮은 채로 위를 향해 비죽 올라갔다.


“말을 해도 참 예쁘게 해, 그렇지? 옛날부터 그랬어. 싸가지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지. …어휴, 그러려니 하고 우리는 셔츠부터 볼까? 음~. 근데 너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잘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럼 둘 다 하기로 하자. 너에게 잘 어울릴 법한 셔츠를 몇 개 생각해 놨거든? 얼굴을 보는 순간 딱! 느낌이 왔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들에 명대는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해 아성을 불렀다.


“아성! 오늘 뭐 맞추러 온 거야?”


조금 떨어져 있던 아성은 스스로 머신에서 커피를 내린 뒤 잔에 따라 한 모금 마셨다가 곧 잔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넣으며 뒤로 돌았다. 입에 안 맞는 모양이다. 게다가 손은 여전히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턱시도.”


군더더기 없는 한 마디에 명대의 눈이 커졌다. 턱시도를 왜 맞추는데? 어차피 결혼도 안 할 거라면서.


“흐흥~. 그으래? 그럼 또 내가 힘을 쓰지 않을 수 없네! 이리오렴. 피앙세?”


이미 일은 그가 손쓸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사이 아성은 소파에 여유롭게 앉아 잡지를 펼치고 있었다. 망할? 명대는 누구 맘대로 턱시도를 맞추냐는 소리가 턱 끝까지 나왔지만 체구만큼이나 우람한 힘에 붙잡혀 뒤로 질질 끌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성은 시선은커녕 고개 한 번 드는 법이 없었다.


“아저씨! 지금 뭐하는 건데?”


그래도 발악은 해 본다. 아저씨란 부름에 옆에 있던 남자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성이 아저씨?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남자의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성이 고개를 들었다.


“쇼핑.”


꿈에서 두 번 볼까 무서운 다정한 미소가 명대의 명치를 꾸욱 누르는 기분이었다.


“-이라고, 분명히 아까 말했을 텐데요?”


그럴 거면 다시는 웃지 말라고. 한 마디 할 새도 없이 명대는 마저 끌려가 커튼 너머로 사라졌다. 끝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성은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웃고 있던 미소를 싹 거두곤 펼쳤던 잡지를 내려놓은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전혀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의 기분을 설명하기란 아성으로서도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꼭 하나를 꼽자면…….


‘우리 결혼하는 거요. 다시 생각해 봐요.’


분노?


분노라니. 맥없이 웃어버린, 엄밀히 말하자면 본인은 웃었다고 생각하지만 입꼬리만 들썩거리다가 만 그의 얼굴은 과연 악마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서늘한 얼굴이다. 아성은 다시 행거로 돌아가 빼곡하게 걸려있는 드레스 셔츠를 하나, 하나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명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당연하게도 아성은 거절이 익숙하지 않았다. 거절에게도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응당 아성의 것이 되어야 함이 옳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처음이라는 높고 험준한 벽을 명대가 부쉈다는 점에선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명대야말로 아성에게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도 아닌 명대가 자신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왜냐면 명대는 절대로 그래선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생각을 하는 동안 행거에서 빠져나온 셔츠들이 옷걸이 채로 아성의 한 팔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이미 명대에 대한 생각으로 터질 것 같은 머리에는 각기 다른 방이 있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가능하게 했다. 아성의 예리한 눈은 명대에게 어울릴 것 같은, 동시에 자신의 취향인 셔츠를 빠르게 골라내고 있었다. 한 번도 망설이거나 멈추지 않았다. 사이즈를 틀리는 일? 물론 불가능하다.


그래, 인정하자. 화가 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명대가 탐탁지 않다. 누군가 자신을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 없던 남자의 오만함에 예외라는 빈틈을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가 멋대로 분탕질을 치는 이가 자신의 연인이라니. 3년 동안의 연애가 줄곧 그래왔다. 아마 명대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아성은 지금껏 꽤 많은 부분의 주도권을 명대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도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데. 대체.


물끄러미 반지를 응시하던 옆모습을 떠올린다. 이후로 이어진 대답은 대단할 것도 없었다. 과정이 문제라고? 뭐가. 선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의례적인 절차나 관례 같은 것들. 만약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계시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의무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성과 명대는 몹시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에겐 더는 선택권도, 호통 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괜찮으니까 말한 것뿐이야.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성의 손길이 문득 멈췄다. 확실히 명대는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어떤 문제도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남자에게 유일한 물음표로 남았다. 해답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일단 해설집을 보는 것부터가 아성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딸기잼을 듬뿍 바른 토스트를 입에 욱여넣을 때부터 이미 알아봤다. 명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하다 싶을 정도의 단 것을 입에 넣고 보는 명대를 아성이 모를 리 없었다. 이제는 모르기 힘들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너는 왜. 아성의 시선이 닫힌 커튼으로 향했다.







“가만 보자. 자기는 어떤 컬러가 어울릴까~?”


뭐든 좋으니까 빨리 끝내라고. 명대는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남자가 하는 양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신이 난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아까 ‘싸가지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아성에 대한 평가로 동지애가 생길 뻔한 것도 잠시. 명대는 역시 시끄러운 것이 싫다는 결론과 함께 어서 이 목적도, 의도도 불투명한 ‘쇼핑’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표정이 왜 그래? 기쁘지 않아?”

“제가 기뻐야 합니까?”


거의 초면인 두 사람 사이에서의 대화는 생각 이상으로 딱딱했다. 정확히는 한 쪽이 영 탐탁찮아 보였다. 아성만큼이나 여러 장의 셔츠를 골라든 남자는 허리를 쭉 펴고 명대를 바라봤다. 암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잘생긴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솔하다. 잘생겼군. 과연 아성의 취향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성은 예전부터 최고를 고집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 밑으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 점이 아주 재수 없으면서도 과연 아성다웠다.


“왜 이렇게 까칠하실까? 프러포즈를 거절이라도 했어? 아니면 싸웠나? 헤어진 건 아닐 테고?”

“대답해야 할 필요는 없죠?”

“프라이버시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명대?”


어지간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입에서 제 이름이 흘러나오자 명대는 문득 멈추곤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저를 두고 아성의 ‘피앙세’라고 불렀었지? 남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뭐든 명대의 입장에선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얘기했어요?”

“얘기하다마다. 하지만 얘기해주지 않았어도 알았을 거야.”


의미가 모호한 말을 중얼거리던 남자는 명대에게 셔츠 한 장을 내밀었다. 일단은 셔츠를 받아들면서도 명대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다. 말마따나 마음만 먹는다면 저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성이 그러하듯 눈앞의 남자도 중국 상류층의 일원 중 하나였다.


반대로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명대는 스스럼없이 입고 있던 셔츠를 훌렁 벗고는 셔츠 소매에 각각 팔을 끼웠다. 꼭 장단을 맞춰줘야만 한다면 빨리 끝내는 편이 나았다. 만약 도망친다고 해도 명대는 기필코 1시간 이내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있으리라. 아성이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또 열이 받는다. 그런 남자가 왜 결혼은 제 마음대로 못해? 아니지. 너무 제 멋대로 해서 이 사달이 났지. 이것도 생각하니 열 받네. 그런 주제에 턱시도는 왜 맞추냐? 예복이 뭐 필요하다고. 어차피 하지도 않을 결혼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냔 말이야. 하려면 혼자 하든가.


“자, 팔 드시고?”

“어, 어…!”

“긴장 풀어. 살살 할 거니까.”


뭐를? 연속되는 물음표 속에 정신이 없는 와중, 명대는 뒤에서 불쑥 들어오는 손에 기겁하듯 놀라 바짝 굳었다. 저보다 확실하게 큰 상대가 뒤에서 끌어안는 것 같은 자세가 되자 어색함은 배가 되었다. 그에 비해 남자는 조금도 아무렇지 않은지 팔만 끼워 넣은 명대의 셔츠 단추를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채워갔다.


고개 숙인 남자가 명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몸도 예쁘네?”


소름. 명대는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과연 아성이 좋아할만 해.”


별개로, 뭔가 미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단순히 기분 탓일까. 순간 기분이 나빠진 명대가 그의 손을 확 뿌리쳤다. 쓸데없이 닿는 면적이 많았던 것이다. 아성을 제외한 누구도 제 몸에 멋대로 손댈 수 없었다. 딱히 그런 약속을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명대가 정해놓은 규칙 중 하나였다.

명대는 돌아서 그를 똑바로 마주 본 채 말했다.


“……대표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친구예요?”


잔뜩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한 명대의 얼굴을 바라보던 남자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친구라고 하기엔 ……좀?”


뭐야, 이 거지같은 대답은. 명대의 미간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다시 뭐라고 할 찰나였다. 아성의 친구? 어쨌든 친구라는 점도.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거란 생각도 지금만큼은 사라지고 없었다. 가만히 당하고 있을 명대가 아니었다.


“아성이 무려 연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따로 네 뒷조사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 어린이.”

“누가 어린……!”


거의 동시에 열린 커튼 너머에선 기다렸다는 듯 아성이 등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또 잠시 할 말을 잃은 것 역시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느새 아성은 검은 턱시도 차림이었다.


“아직도 안 끝났습니까?”

“세상에!”


조금 전까지의 긴장감은 어디로 자취를 감췄는지, 남자는 호들갑을 떨며 아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의 타이와 소매를 다시 매만져주며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역시 모델이 좋아야 옷도 산다며. 너한테 어울리는 건 또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며. 아껴둔 건데 어떻게 찾았냐고도. 하여튼 간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지켜보는 명대의 입장에선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일단 누군가가 아성을 만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언짢았다.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는 아성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상대는 충분히 의심스러운 남자가 아닌가.


“내가 할 테니까 그만 나가 봐. 마오.”

“누굴? 네 피앙세?”

“아직 아니야.”


단답형의 무뚝뚝한 말투는 아성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지만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달리 들릴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명대는 알았고 남자도 모르진 않았다. 그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군말 없이 커튼을 열고 사라졌다. 하지만 다시 닫지는 않았다.


“믿고 맡겼더니 진도가 영 느리군요.”


다가 온 아성은 들고 온 셔츠 더미를 쇼파 위로 툭 내려놓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남은 단추를 마저 채웠다. 자연스런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명대는 보란 듯 그의 손을 탁, 쳐냈다.


“뭐 하자는 거예요?”


그리곤 미뤄뒀던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쾌한 일이라곤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언짢은 건 물론 눈앞의 남자였다.


“오늘의 스케줄 중에 하나죠.”

“아-하. 그렇습니까? 제가 모르는 사이에 우린 이미 여기 오기로 되어있었나 보죠?”

“물론. 마오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말에 열리는 샵도 아니고 말이죠.”


굴하지 않은 아성이 마저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 이번에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또한 여전히 언짢은 상태였다. 게다가 방금 전 명대의 손짓은 매우 위험한 수위였다. 찰나였지만 웃지 못 할 뻔 했다.


“아저씨 진짜 짜증 나.”

“그럼 재밌는 일을 할까요?”


마땅한 설명도 없이 빠르게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대화만큼이나 빠른 손짓이었다. 아성의 손이 명대의 버클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그대로 제 쪽을 향해 끌어당겼다. 순간 휘청거린 몸이 앞으로 쏠렸다. 하지만 넘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둘 아성이 아니었으므로.


“뭐하는……!”


짓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행동으로 알려줄 수 있다. 길고 능숙한 손가락이 버클을 푸는 건 순식간이었다. 툭 열린 버클의 무게를 체감하기도 전에 지퍼까지 쑥 내린 연속 동작은 감탄이 나올 만큼 빨랐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아래로 떨어지는 버클과 함께 헐렁한 바지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뿐인가? 반항은커녕 항변의 한 마디를 채 하기도 전에 가슴을 가볍게 툭 미는 손길에 명대가 어처구니없이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소파에 종아리가 걸려 그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명대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모든 일이 10초가 될까 말까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턱시도 차림의 아성이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 손은 명대의 어깨 바로 옆에 올려 둔 채, 소파의 등받이를 짚고서. 완벽하게 자신의 테두리 안에 명대를 가둔 그는.


“짜증난다고 했습니까?”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에도 짜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입술이 먼저 닿았다. 밀어내거나 고개를 돌릴 새는 물론 없었다. 포개어진 입술에 길을 여는 건 오랜 습관이었고, 동시에 버릇이었다. 뜨겁고 달짝한 혀가 입안을 휘젓자 명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손끝이 바짝 떨리는가 싶더니 숨이 한 번 멎었다. 아성의 키스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명대는 아성의 멱살을 꽈악, 움켜쥐었다.




“……한 번 해 보자는 거죠?”




지금이라면 진짜로 한 대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명대의 입꼬리가 스리슬쩍 올라갔다.









/@SEOBANG


왜 김아성김명대는 바람 잘 날이 없는가 . . .

그 맛에 보지만 말입니다. 하하! (상반된_태도)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길어질 것 같습니다.

완결까지 차곡차곡 뵙겠습니다.


오늘도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어, 아주 기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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